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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 퇴사할 때는 그냥 "마지막 3개월 평균 월급 곱하기 근속연수"가 퇴직금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두 번이나 퇴사를 겪으면서도 퇴직연금이 뭔지, DB와 DC가 어떻게 다른지 제대로 따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직장에서 회사가 퇴직연금제도에 대한 설명회를 통해 DB와 DC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그날 이후 제 자산 관리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퇴직금 제도, 왜 퇴직연금으로 바뀌었나
퇴직금 제도는 단순했습니다. 회사가 내부에 돈을 쌓아뒀다가 직원이 퇴사할 때 한꺼번에 지급하는 방식이었죠. 계산법도 간단해서 '퇴사 직전 3개월 평균 월급 × 근속연수'가 곧 퇴직금이었습니다. 20년 다니고 월급 500만 원이면 1억, 이 공식은 부모님 세대에게 인생 2막을 여는 종잣돈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직원 한 명이 오래 다닐수록 퇴사 시점에 한꺼번에 줘야 할 목돈이 커집니다. 장사가 잘되는 대기업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은 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실제로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퇴직금 체불이 발생해왔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잘 보여줍니다(출처: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제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회사가 돈을 내부에 쌓지 않고,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외부 금융기관에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는 방식입니다. 직원이 퇴사하면 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에서 퇴직금을 수령하게 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회사가 도산하더라도 퇴직금은 금융기관 내 별도 계정으로 분리 보호되어 온전히 지켜집니다. 또한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지, 연금으로 나눠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퇴직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연금 수령을 선택하면 퇴직소득세 감면 혜택도 주어집니다.
DB vs DC, 뭐가 진짜 나에게 유리한가
퇴직연금을 구성하는 두 축이 바로 DB형과 DC형입니다. 확정급여형(DB, Defined-Benefit)은 쉽게 말해 회사가 돈을 굴리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확정급여'란 근로자가 퇴사할 때 받을 금액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퇴사 직전 3개월 평균 월급 × 근속연수라는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회사는 금융기관에 쌓인 돈을 운용해 그 금액을 맞춰줄 책임을 집니다. 운용 수익이 나면 회사 몫이고, 손실이 나도 회사가 책임집니다.
반면 확정기여형(DC, Defined-Contribution)은 근로자가 직접 운용 지시를 내립니다. '확정기여'란 회사가 입금하는 금액은 정해져 있지만, 그 돈을 어떻게 불릴지는 각자 근로자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근로자마다 별도 계좌가 생기고, 매수·매도 주문도 본인이 직접 냅니다. 출금은 안 되지만 운용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수익이 나면 근로자 것이고, 손실도 근로자 몫입니다.
일반적으로 임금 상승률이 높은 저연차·저임금 구간에서는 DB가 유리하고, 임금 인상이 더딘 고연차·고임금 구간에서는 DC가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 논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임금 수준보다 본인이 직접 운용할 의지와 실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결정적인 변수였습니다. 저는 과장급에 해당하는 중간 허리 구간이었는데, 투자에 관심이 생기면서 DC로 전환하고 나서야 제 퇴직금이 얼마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현재 저는 DC 계좌에서 아래와 같이 운용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은 위험자산 투자 한도가 70%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감안해야 합니다.
- S&P500 ETF 35% — 미국 대형주 500개를 추종하는 지수로, 장기 우상향 기대감에 투자
- Nasdaq100 ETF 35% —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100 지수 추종, 성장성 비중 확대
- TDF2045 20% — 타깃데이트펀드(Target Date Fund). 목표 은퇴 시점인 2045년을 기준으로 자동으로 주식·채권 비중을 조절해주는 펀드로, 30% 의무 비위험자산 구간을 채우면서도 채권으로만 30%를 모두 채우는 것보다 나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선택했습니다
이 포트폴리오로 2년간 운용한 누적 수익률이 약 40%입니다. DB로 그냥 회사에 맡겼다면 절대 기대할 수 없는 숫자입니다.
IRP, 퇴직금 통장인 동시에 절세 계좌
개인형 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성격이 좀 복잡합니다. 여기서 IRP란 개인이 직접 개설해 퇴직금을 수령하거나, 노후를 위한 추가 저축을 할 수 있는 퇴직연금 계좌입니다. 퇴직할 때 반드시 IRP 계좌를 통해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재 퇴직을 앞둔 분이라면 IRP 계좌 개설이 필수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저는 첫 번째, 두 번째 퇴사 때 IRP로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당시엔 퇴직금이 들어오자마자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생긴 목돈처럼 느껴져 소비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DB로 운용되던 회사에서 나온 퇴직금이었으니, 그 돈이 어떻게 불어났는지 과정을 본 적이 없었던 탓도 컸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소비 패턴이었습니다.
지금 DC로 2년째 직접 운용하면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돈이 어디에 얼마가 들어있는지, 오늘 수익률이 얼마인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일시금으로 받더라도 예전처럼 흥청망청 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직접 굴려본 경험이 자산에 대한 감각 자체를 바꿔놓은 겁니다.
IRP의 또 다른 기능은 개인 저축입니다. 내 돈을 추가로 입금하면 연금저축과 동일한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집니다. 연 최대 900만 원 한도 내에서 납입하면 최대 16.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절세 효과가 상당합니다. 퇴직금 수령 기능과 개인 노후 저축 기능을 동시에 갖춘 계좌라는 점에서, IRP는 퇴직연금 삼총사 중 가장 활용 폭이 넓은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DB형이면 퇴직금을 더 적게 받을 수도 있나요?
A. DB형은 퇴사 시점의 '직전 3개월 평균 월급 × 근속연수'로 수령액이 결정됩니다. 회사가 운용을 잘못해 수익이 부족해도 근로자가 받는 금액은 동일합니다. 대신 임금 인상이 크지 않은 고연차 구간에서는 DC보다 수익이 낮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결국 본인 임금 상승 속도와 투자 수익률을 비교해봐야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Q. DC형으로 바꾸면 손실도 제가 다 책임져야 하나요?
A. 맞습니다. DC형은 운용 수익도, 손실도 모두 근로자 본인의 몫입니다. 리스크를 직접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장기 투자 관점에서 S&P500이나 Nasdaq100 같은 분산 ETF를 활용하면 DB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투자에 관심이 없다면 DB를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Q. IRP 계좌는 꼭 만들어야 하나요?
A. 퇴직할 때 퇴직금을 수령하려면 IRP 계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행 제도상 퇴직금은 IRP 계좌를 통해서만 지급됩니다. 여기에 개인 저축을 추가하면 연간 최대 9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재직 중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Q. 퇴직연금에서 위험자산에 7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DC형과 IRP 계좌에서는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에 납입금의 70%까지만 투자하도록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30%는 채권, TDF 등 비교적 안전한 자산으로 채워야 합니다. 저는 이 30% 구간에 채권 대신 TDF2045를 선택해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결론
퇴직연금은 그냥 퇴사할 때 받는 돈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DB로 수동적으로 쌓이던 시절과 DC로 직접 굴리는 지금은 자산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다릅니다. 두 번의 퇴사에서 일시금을 받았을 때 흥청망청 쓰던 패턴이, DC 운용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라졌습니다. 2024년부터 지금까지 약 2년 누적 수익률 40%라는 숫자보다 더 가치 있는 변화입니다.
DB가 맞는 분이 있고 DC가 맞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투자 성향을 기준으로 DC를 선택했고 지금까지는 만족스럽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 고민 중이라면, 퇴직연금 계좌 안에서 어떤 상품들이 있고 어떤 상품을 운용하는 것이 좋을지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