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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년 차, 첫 아이를 낳고 나서야 저는 통장 잔고를 제대로 들여다봤습니다. 맞벌이 부부가 신혼 3년을 보내면서 모은 돈이 생각보다 훨씬 적었거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가계부는 '쓴 돈을 기록하는 일기'가 아니라, 쓸 돈을 미리 정해두는 예산 통제 시스템이라는 것을요. 이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저희 부부의 통장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변동지출을 기록해야 가계부가 살아난다
신혼 시절 저도 가계부를 써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버티지 못하고 접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이유가 명확합니다. 기록에만 집중했지, 예산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겁니다.
가계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지출을 두 가지로 나눠야 합니다.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입니다. 고정 지출이란 대출이자, 통신료, 공과금, 사교육비처럼 매달 거의 비슷하게 나가는 항목입니다. 이 항목들은 일일이 기록하는 것보다 월초에 금액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반면 변동 지출은 외식비, 쇼핑비, 문화/레저비처럼 매달 달라지는 항목인데, 바로 이 부분이 가계부가 집중해야 할 핵심 영역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변동 지출 전용 가계부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남편과 공유해서 함께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외식비, 식자재비, 쇼핑비, 문화/레저비 등 카테고리로 나누고, 지출할 때마다 남은 예산을 적습니다. 차량 연료 게이지처럼 남은 예산이 눈에 보이니,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어 소비 통제가 되더라구요. 이 방식이 단순 기록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쇼핑비는 필수재와 사치재로 한 번 더 구분합니다. 여기서 필수재란 생활에 꼭 필요한 소비를, 사치재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갖고 싶어서 구매하는 소비를 뜻합니다.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것은 사치재로 분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구분하기 시작한 뒤로 무의식적인 카드 결제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변동 지출 카테고리와 기록 원칙
가계부가 제 기능을 하려면 변동 지출 항목마다 월 예산을 먼저 설정하고, 지출 후에는 반드시 잔여 예산을 적어야 합니다. 카테고리는 더 다양하지만, 그 중 대표적인 3개 카테고리의 운용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외식비: 월초에 예산을 타이트하게 설정하고, 한 번 외식할 때마다 남은 금액을 차감해 기록합니다. 외벌이 가정이라면 집밥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장 빠른 절감 방법입니다.
- 쇼핑비: 필수재와 사치재를 분리 기록합니다. 사치재 예산이 소진되면 그달은 더 이상 사치재 구매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습니다.
- 문화·레저비: 가족 여가 활동을 위한 예산으로, 미리 상한선을 정해두면 지출 후 죄책감 없이 여가를 즐길 수 있습니다.
출처: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평균 소비 지출에서 외식·숙박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소비의 약 13%에 달합니다. 이 항목 하나만 예산으로 통제해도 가계 재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산관리와 저축률, 숫자로 목표를 정해야 지킨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결혼 초에는 저축률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여기서 저축률이란 월 소득 대비 저축·투자에 배분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합니다. 재무설계 원칙상 경제활동 기간 중에는 소득의 30~40%를 저축·투자에 써야 안정적인 자산 형성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월 소득이 500만 원이라면 최소 150만 원은 저축이나 투자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 목표 금액을 먼저 정해두지 않으면 가계부는 결코 작동하지 않습니다. '남은 돈을 모은다'는 방식으로는 항상 쓸 돈이 먼저 채워지고, 저축은 뒤로 밀리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저축 및 투자액을 먼저 이체하고 남은 돈으로 생활하는 구조를 만든 다음부터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녀 교육비도 예산관리의 대상입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교육비를 늘리다 보면, 실제로는 부모의 불안을 달래는 소비가 되기 쉽습니다. 재무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기준을 보면, 유아기 자녀 교육비는 소득의 10%, 초등학생은 15%, 중고등학생은 10%를 상한으로 설정하는 것이 적정 수준입니다. 소득 500만 원 가구라면 최대 75만 원 선입니다. 저도 내년부터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할 예정이라, 이 기준을 고려해서 지출을 하려고 합니다.
자동차처럼 고정 지출 구조를 바꿔야 하는 항목도 있습니다. 자동차를 보유하면 할부금, 보험료, 주유비, 정기 점검비가 연쇄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를 자본적 지출의 반대 개념인 연쇄 소비라고 볼 수 있는데, 쉽게 말해 한 번의 구매가 계속해서 추가 지출을 끌어당기는 구조입니다. 소득 500만 원 4인 가족이 3천만 원대 이상 차량을 유지하는 것은 고정비 구조 자체를 무너뜨리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자본적 지출이라는 개념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적 지출이란 현재의 지출이 미래 수익으로 이어지는 투자성 소비를 말합니다. 자격증 취득, 직무 교육, 이직 준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모두 자본적 지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이 구분을 흐릿하게 두면 PT비, 요가 수강료 등이 슬그머니 자기계발 항목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지출이 실제로 수익으로 연결되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출처: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인 이상 가구의 평균 흑자율(소득 대비 저축 가능 비율)은 약 20% 수준입니다. 목표 저축률 30~4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인데,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가계부 작성의 실질적인 목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계부 앱이랑 엑셀 중에 뭐가 더 나은가요?
A. 저는 엑셀과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병용합니다. 부부가 함께 관리하는 변동 지출 가계부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공유하고, 월별 자산 정리는 엑셀로 따로 관리합니다. 앱은 자동 분류가 편리하지만, 직접 입력하면서 지출을 체감하는 효과가 적습니다. 제 경험상 입력이 불편할수록 지출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Q. 변동 지출 예산은 얼마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A. 처음부터 타이트하게 잡으면 3일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먼저 최근 3개월치 외식비·쇼핑비·문화레저비 평균을 구해보고, 그 평균보다 10~20% 낮은 금액으로 예산을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처음부터 반토막 내려다가 가계부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예산을 설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Q. 부부가 가계부를 같이 써야 하나요, 따로 써야 하나요?
A. 저는 공유를 강하게 권합니다. 가계부를 혼자만 쓰면, 작성하지 않은 배우자는 왜 아껴야 하는지 피부로 느끼기 어렵습니다. 부부가 같이 월말 리뷰를 하고, 다음 달 예산을 함께 정하는 과정이 자산 축적의 공감대를 만들어줍니다.
Q. 저축률 30%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요?
A. 처음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기준 평균 흑자율이 약 20%라는 점을 감안하면, 30%는 평균을 10%포인트 웃도는 수준입니다. 소득이 늘어도 소비가 함께 늘면 저축률은 제자리입니다. 목표 저축률을 먼저 정해두고 그 나머지로 생활하는 구조가 아니면 30%는 영원히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결론
가계부를 3종류나 쓰다 보면 주변에서 번거롭지 않냐고 묻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작성할 때는 가계부 양식도 어색하고 매번 작성한다는게 귀찮게 느껴졌지만, 익숙해지고 나서는 오히려 가계부를 안 쓰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집니다. 가계부를 작성하지 않던 시절에는 카드값이 나가고 나서야 얼마나 썼는지 알았지만, 지금은 월말이 되기 전에 잔여 예산이 얼마인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 큰 그림을 보고 소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가계부가 빛을 발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저축 목표액을 먼저 정해두는 것. 둘째, 변동지출의 예산을 설정하고 관리할 것. 마지막으로, 배우자가 있다면 반드시 함께 관리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아무리 꼼꼼하게 기록해도 통장 잔고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가계부 양식에 너무 얽매여서 머리 아파하며 시작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선 작성하고 양식은 매월 개선해 나가면 되니, 당장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